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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도다리 쑥국 그리고 도다리 이야기

슈풍크1 2023. 3. 22. 22:44

지난 주말에 문득 생각이 나서, 도다리 쑥국을 끓였다. 초봄에 맛보는 도다리 쑥국은 그야말로 '봄의 맛'이다. 이제 갓 돋아난 쑥은 향기롭고, 담백하고 말캉한 도다리 살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다. 사실, 이 도다리 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보다는 쑥이라고 할 수 있다. 국물에 은은하게 퍼진 어린 쑥의 향을 즐기는 음식이다. 도다리는 그저 거들뿐. 그래서 이름도 '쑥 도다리국'이 아니라 '도다리 쑥국' 일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3월 중순이 넘어 끓이는 도다리 쑥국은 이미 적기를 놓쳤다. 쑥은 이미 억세졌고, 향은 지나치게 강했다. 도다리 쑥국을 제대로 맛보려면, 2월 중순경 쑥의 새순이 막 돋아났을 때가 좋다. 

 

도다리 쑥국
서울의 유명한 식당인 '충무집'의 도다리 쑥국. 맛은 있는데, 가격이 사악한 편.

 

도다리 쑥국에 들어가는 도다리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좀 있다. 사실, 우리가 '도다리'라고 부르는 생선은 도다리가 아니다. 무슨말인고 하니, 우리가 보통 도다리라고 부르는 생선은 표준명 ' 문치가자미'이고, 표준명 '도다리'는 '담배 도다리', '담배쟁이'라는 방언으로 유통이 되는데, 산지인 경남 일대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는 생선이다.

 

표준명 도다리
표준명 도다리. 자신의 이름을 문치 가자미에게 뺏기고, 담배쟁이, 담배 도다리라는 기괴한 이름을 받았다.

 

표준명이야 어떻게 됐든, 대중이 알고 있는 도다리는 문치 가자미인 셈인데, 이 문치가자미의 제철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사실, 생선의 제철은 언제 몸에 지방을 축적하느냐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대부분의 생선은 산란기에 몸의 영양분이 알로 옮겨가기 때문에, 산란기만큼은 가장 피해야 할 시기로 본다. 그런데 문치가자미의 산란기가 바로 봄이다. 도다리 쑥국이야 도다리가 조연이고, 담백한 맛으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는데, '봄도다리'란 이름으로, 세꼬시용, 횟감용 도다리 값도 봄만 되면 덩달아 오르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문치 가자미
문치 가자미. 흔히 도다리로 불린다.

더욱이, 이 문치 가자미는 전량 자연산인데, 봄만 되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다리로 불리는 또 다른 제3의 어종이 등장하는데, 이 놈이 바로 '강도다리'다. 넓적한 체형과 지느러미의 줄무늬 때문에, 문치가자미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강도다리는, 상업용으로 유통되는 양은 거의 대부분 양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봄도다리'란 이름으로 팔리는 세꼬시나 회는 십중팔구 강도다리일 가능성이 높다. 양식이라고 해서 나쁜 게 아니고, 강도다리 자체가 문치가자미 보다 떨어지는 어종은 아니지만, 내가 먹는 어종이 뭔지는 알고 먹는 게 좋지 않을까.

 

강도다리
봄에 도다리란 이름으로 팔리는 생선은 강도다리일 확률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