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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 이야기, 그리고 홋카이도 요이치 증류소

by 슈풍크1 2022. 10. 6.

일본 문화에서 신기하고, 어쩔 때는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데, 자신들이 받아들인 서양 문물을 본토인 유럽이나 북미보다 더 잘 간직하고,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간단한 예로, 아래 사진은 故 아베 신조 총리가 첫 취임하여, 내각 회의 후에 촬영한 기념사진인데, 남자들은 모두 소위 연미복과 회색 바지를 입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저녁시간 이전에 입는 '모닝코트'라는 예복으로, 일반 수트 보다는 한 단계 높은 서양 복식인데, 사실 일반 수트도 노타이 차림으로 입어도 흉이 되지 않는 현대에 아직까지 이 정도 격식을 차리는 국가는 글쎄... 내가 알기론 일본이 유일하다. 난 나쁘게 보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게 이런 복식 문화는 이미 본인들의 문화가 된 지 오래일 것이고, 이들은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는 데는 탁월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일본 내각 회의 후 기념 사진 - 모닝코트 착장
아베 내각 - 모닝코트 착장

근래 위스키는 세계적인 원액 품귀 현상으로, 일부 유명 싱글몰트 위주로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그 정점에는 일본 위스키가 있다. 일본 싱글몰트의 간판인 야마자키의 12년 숙성 위스키는 가격이 무려 30만원에 육박한다. 일본은 아주 예전부터 위스키 강국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종주국이고, 미국은 그들만의 위스키인 버번을 만들어 냈으니 또 다른 종주국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일본은 스카치 스타일의 위스키를 더 스카치스럽게 만들어내고 있으니, 여기서도 일본인들의 기질이 드러난다.

 

일본 위스키의 세계적 명성에는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는데, 한명은 산토리 위스키 창업자인 도리이 신지로 (1879 ~ 1962)이고, 또 한 명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인 다케쓰루 마사타카 (1894~1979)이다. 다케쓰루 얘기부터 먼저 하면,  태생이 양조장집 아들이었던 그는 1918년에 스코틀랜드로 위스키 유학을 떠난다. 지금도 존재하는 롱몬 증류소에서 2년간 위스키를 배우고 귀국하였지만, 1차 대전으로 소비가 침체된 일본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한편, 도리이 신지로는 타고난 사업가로, 원래는 와인을 수입해 팔다 직접 와인 생산에 뛰어 들어 큰돈을 벌었다.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오사카 근처에 야마자키 증류소를 짓고, 책임자로 다케쓰루를 영입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의기 투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유학파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 방식의 정통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래서 늘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비슷한 홋카이도를 꿈꿨다. 그러나, 장사꾼 도리이는 일본인에게 먹히는 대중적인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 했고, 수요가 많은 본토에 머물고 싶어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결별을 하고, 다케쓰루는 홋카이도로 건너가 평생의 꿈이었던 증류소를 설립하는데, 이곳이 바로 요이치 증류소이다.

 

난 이곳을 2018년에 방문했는데, 굉장히 시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증류소 건물도 아름답고, 방문객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도 잘 구성되어 있다. 특히 다케쓰루의 인생 자체가 매우 드라마틱한 데다, 스코틀랜드인 부인 Rita와의 러브스토리까지 더해져서, 이곳은 단순히 증류소라기 보다는 위스키 테마파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요이치 증류소
아름다운 요이치 증류소

더욱이 이 곳은 입장료도 없는데, 방문객들에게 무려 세잔 (두 잔의 위스키와 한잔의 애플와인)의 시음 기회를 준다.

시음장에서도 쿠폰이나 티켓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무한대로 시음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아름다운 증류소에 그런 몰지각한 방문객은 없는 것 같았다.

요이치 증류소 시음
세잔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기념품 삽도 잘 꾸며져 있어, 술꾼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는데, 이곳 역시 원액 부족은 피할 수 없는지 숙성 년수가 표기된 공식 제품은 판매를 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2000년대에 증류된 원액을 담은 요이치 싱글몰트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도 몇 년후에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요이치 2000's
기념품샵의 요이치 2000's

요이치 증류소가 소속된 닛카 위스키는 지금은 아사히 맥주에 인수되었다.

도리이의 산토리 위스키는 2013년에 미국의 짐빔을 인수하며, 세계적인 주류 메이저가 되었고, 현재는 산하에 우리가 알만한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의 대표적 증류소인 라프로익과 보모어가 산토리 소유다.

가까운 미래에 야마자키 증류소도 꼭 한번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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