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치 그룹의 수많은 브랜드 중, 해밀턴은 티쏘와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포지션의 엔트리 급 브랜드인데, 스와치 그룹의 대부분 브랜드들이 그렇듯이 탄탄한 헤리티지와 방대한 라인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저 그런 저렴한 시계로 치부할 수 없는 브랜드이다. 해밀턴 헤리티지의 핵심은 미군에 군용 시계를 납품했던 역사인데, 이를 바탕으로 핵심 라인업 중 하나인, '카키필드'를 운영하고 있다. 헤리티지에서 드러나듯이 해밀턴은 미국 태생의 브랜드이다. 지금은 스와치 그룹 소속이 되었지만, 태생이 미국이다보니 대부분 스위스 태생의 기계식 브랜드들과는 결이 좀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해밀턴의 시계가 등장한건, 이 시계가 미국색이 드러나는 브랜드라는 점이 아마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스토리 자체가 미국적이었으므로, 해밀턴이 가장 어울리는 브랜드였을 것이다. 인터스텔라에는 두 점의 해밀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쿠퍼 (매튜 매커너히)가 착용하고 나오는 파일럿 워치 ' 카키 에비에이션'이 있고, 또 하나는 주인공이 딸 머피 (제시카 차스테인) 에게 선물하고 우주로 떠난 또 하나의 시계인데, 이 시계는 당시에 시판되는 모델이 아니라, 온전히 영화를 위한 소품이었다.
영화팬들, 혹은 시계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시계는 카키 에비에이션 보다는 이 이름 없는 '소품시계' 쪽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문제의 실마리를 해결하고, 시공간을 넘어 아빠와 딸이 소통하는 주요 매개체로 등장하는 데다가, 그 디자인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 개봉 후에 '소품시계'를 시판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들은 체도 않던 해밀턴은 영화 개봉 후 5년이 지난 2019년에야 영화 속 소품과 거의 흡사한 제품을 '카키필드 머피'라는 이름으로 시판하게 된다. 당시 이 제품은 화제 속에 큰 인기를 누리지만, 직경 42mm 제품은 다소 부담스러운 크기였기 때문에, 크기만 좀 줄여 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었다. 2년을 침묵하던 해밀턴이 올해 11월에 내놓은 모델이 바로 이 38mm짜리 카키필드 머피이다.
일단 디자인은 영화에도 등장을 하고, 42mm 제품도 먼저 공개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없다. 큼직한 아라빅 인덱스는 파일럿 워치의 주요 특징이지만, 해밀턴에서는 굳이 이 시계를 파일럿 워치의 범주에 넣고 있지는 않고 있다. 고전적인 캐서드럴 핸즈, 검정색 가죽 밴드와 조합은 드레스 워치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모델이 언뜻 봤을 때 빈티지 시계처럼 보이는 이유는, 인덱스와 핸즈에 칠해진 수퍼 루미노바 도료의 색상 때문일 텐데, 적당히 올드한 느낌으로 빈티지한 감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42mm 버전과는 아주 작은 디테일의 차이가 있는데, 42mm 버전은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주인공이 시계 초침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내뱉은 대사 '유레카'가 모스 부호로 각인이 되어 있는데, 38mm 버전은 이 부분이 삭제가 되어있다. 영화를 인상깊에 본 이들이라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일 수 있겠다. 스펙으로도 어디 가서 딸리지 않는다. 100m 방수를 지원하고, 해밀턴 시계에 두루 쓰이는 ETA 2824 기반의 H-10 칼리버는 8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자랑한다.
현재 이 모델은 전 세계적인 인기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초기 입고분이 완판되었다고 하는데, 재입고가 되면 구매를 고려해볼 만한 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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